창작노트/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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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에게창작노트/시편 2019. 3. 26. 12:37
임이여 그렇게 가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남아서 싸우는 것이 나을 뻔 했습니다.적은 임의 가족들과 동지들을 사정 없이 짓밟고 올바름에 대한 믿음을 짓밟을 뿐한 점의 반성도 없이 그렇게 곧게 거악으로만 치닫습니다.적은 똘똘 뭉쳐서 임의 진영을 공략하는데 남은 무리는 다투기만 하고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임이여 사실은 우리에게 이 악의 뿌리를 뽑을 기회가 있었습니다.그러나 번번이 놓쳐 버리고 숨 죽였던 적 되살아나 악이 창궐하는 계절이 돌아온 것입니다.돌아온 적은 백성의 눈과 귀를 조롱하고 담대하게 사관의 붓도 희롱하고 있습니다.오늘도 작은 불을 든 무리가 광장에 모여서 우리의 대적을 질정하고자 간절히 염원하겠지만알아야 할 이들에게 그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정의는 명패만 남고 대적의 앞잡이로 부림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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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편지창작노트/시편 2019. 3. 20. 00:14
사랑하는 누이에게망설이다가 펜을 든다이 늦은 시간에 나는 왜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것일까 오늘 저녁 손이 아파서 후식으로 오렌지를 깍아 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설겆이 하다가 손가락 다쳤다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깨진 유리조각에 찔려 피 흘렸다는 소리를 듣고가슴 한 쪽이 찌르르 울려 지나칠 수 없어내 옆에서 밥 먹는 네 손 잡고 다친 손가락 살펴 보았다 아직도 내 손길 거부하는 네 손가락 한 마디에 물기 어린 밴드 하나 돌돌 말려 고개 숙이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대일밴드도 없고상처에 바를 후시딘 밖에 없는데 - 너는 고무장갑도 없이 설거지를 하고아이들을 위해 오늘 저녁도 정성껏 준비하였구나 이제는 하루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너를 보러 퇴근 하지 않고 저녁 먹으러 집에 오는 사이가 되었지만왠지 모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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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의 죽음창작노트/시편 2019. 3. 15. 20:05
부천시청 공무원 유OO - 아침 출근길에 너의 죽음을 들었다 신도시 아파트 공사장에서 뛰어내렸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 아내의 핸드폰에는 새벽부터 너의 사랑하는 부인의 전화번호가 찍혀있었다 급보를 듣고 너의 형제와 네 가족처럼 지내던 벗들이 아침부터 부산하게 너의 주검을 좇았다 너는 앰뷸런스를 타고 구로성심병원, 부천장례식장을 지나서 부천성모병원에 차디찬 육신을 눕힐 수 있었다 부천시 공무원 유OO - 네 조문을 위해 부천시장도 찾아 오고 네 동료 공무원들도 일찍부터 빈소를 찾아 왔다 네 사랑하는 부인과 네 형과 나의 아내가 유족 대표로서 부천시장에게 네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 요청했다 네 죽음의 진상은 그 억울하고 사무친 고통은 내 이메일과 네 컴퓨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네가 고통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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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바다(2008)창작노트/시편 2019. 3. 14. 11:17
Image by David Mark from Pixabay 오래간만에 아내를 안았다.둘째 딸 아이 낳고 부쩍 줄어든 우리의 관계 -맘이 동할 땐 아이들 눈치보며 곤한 아내를 채근하곤 했지만종일 일하다 집에 들어와 아이들 봐주며 하루를 마감할 때면 나도 지쳐 드르렁 코골며 잠 들곤 하는게 우리 부부의 일상 사실, 아이들 둘이 엄마 양쪽에 찰싹 붙어아빠의 접근을 불허하는 우리집 침실 분위기는맞벌이하러 시골에 갔다오시던 어머니를 고대하던이내 유년기의 추억이 허락한 관용일지도 모른다. 가사 노동과 아이들 육아로 노곤한 하루를 보낸 아내는 종종 육체의 휴식을 위해 구원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한다. 내게 젖이 있다면 아이들을 끼고 잘텐데...' 싱거운 소리를 하며때로 역정을 내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