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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락 편지
    창작노트/시편 2019. 3. 20. 00:14


    사랑하는 누이에게

    망설이다가 펜을 든다

    이 늦은 시간에 나는 왜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것일까


    오늘 저녁 손이 아파서 후식으로 오렌지를 깍아 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설겆이 하다가 손가락 다쳤다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깨진 유리조각에 찔려 피 흘렸다는 소리를 듣고

    가슴 한 쪽이 찌르르 울려 지나칠 수 없어

    내 옆에서 밥 먹는 네 손 잡고 다친 손가락 살펴 보았다


    아직도 내 손길 거부하는 네 손가락 한 마디에 

    물기 어린 밴드 하나 돌돌 말려 고개 숙이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대일밴드도 없고

    상처에 바를 후시딘 밖에 없는데 - 

    너는 고무장갑도 없이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위해 오늘 저녁도 정성껏 준비하였구나


    이제는 하루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너를 보러 

    퇴근 하지 않고 저녁 먹으러 집에 오는 사이가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은 퇴근 -

    널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였다


    편의점에서 급히 산 마미손 고무장갑 한 손과

    혹시 몰라 방수 대일밴드와 그냥 대일밴드 2팩

    후시딘까지 함께 싱크대 옆에 챙겨 놓았다


    평소에는 내버려두던 쌓인 설겆이도 깨끗이 정리하고

    내일은 네가 아픈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아프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9년 3월 20일 자정 지나서

    네가 오빠라고 부르는 남편 ...

    이제는 네 인생에 행인과 다름 없는 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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